흙의 이윤이와 물의 조재영 작가가 신안의 갯벌에서 조우한 바다와 대기 그리고 해의 영감은 우연일까요? 달의 주기가 잊혀진 목조선의 시간을 불러오듯이, 네 개의 책상이 만나 <리더’s 테이블>이 되고, 우리는 어떤 끌림과 모임의 사이에 잠시 현 상태로 있는 것 뿐인건 아닐까요? 그들은 어떻게 왜 지금 만났는지, 음양오행으로 리서치 듀오 딜리네스(Delines)의 운명을 읽고, 둘이 만들어낸 집합체를 우주의 원리로 해제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딜리네스(이윤이, 조재영)
x 이영은(연극연출가, 명리학자)
딜리네스:
Delines딜리네스는 시각 예술가 이윤이, 조재영이 구성한 아티스틱 리서치 듀오이다. 땅속줄기처럼 얽히고 공기처럼 퍼지는 수평적인 대화와 영적 성장을 나누는 우정의 조직체이다. 변화하는 세계에서 살아있는 땅의 거주자이자 매개자로서, 탄생과 변형의 과정을 통해 피어나는 생명의 무늬와 질감을 포착하고 기록하며 그 순환에 동참한다. 딜리네스는 이 여정을 통해 드러나는 구체적인 ‘장소’에 주목하고, 그 장소의 감각을 일깨우는 예술이란 무엇인지 질문한다. 문학과 인류학을 경유하는 여성적 글쓰기, 질료적인 영상, 그리고 확산하는 조각 등 이들 매체가 엮어가는 연금술적 상상을 시각적 내러티브로 구축한다.
이영은:
이영은은 연극연출가이며 ‘극단 김장하는날’의 대표이다. 주로 작·연출가로서 창작하며 여러 개의 의미망이 하나로 연결되는 ‘네트워크 플롯’을 개발하여 실험하고 있다. 이것은 정통 주류 플롯에 대항하는 개념으로, 다양화되고 파편화된 현대 사회를 반영하려는 시도이다. 이를 통해 서로 다름의 ‘연결과 공존’이라는 주제를 성찰하고자 한다. 이영은은 또한 명리학자이기도 하다. 동양철학의 사유를 바탕으로 명리학을 통해 나와 타인을 이해하고 과거를 분석하며 미래를 예측한다. 특히 예술가의 삶과 작품을 명리학을 통해 읽어내는 작업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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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무언가를 하려던 것은 아니었어요. 우리는 각자가 구축해온 세계에 대한 질문을 하기 시작했고 그 세계를 다시 볼 수 있는 다른 눈을 찾고 있었어요. 그러니 각자의 해방을 위한 어떤 이동이 필요했던 것이지요. 여기 ‘로쿠스 솔루스’가 아마도 그 계기를 만들어주지 않았을까 되돌아봅니다. 각자가 구축해 온 세계 밖에 있는 또 다른 세계. 이것이 ‘딜리네스’가 말하는 중간계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윤이는 영상 밖으로 그리고 조재영은 조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 ‘딜리네스’는 다시금 그들 안에 내재한 언어들을 불러와 새로운 세계를 만들었습니다. 누군가는 말로 대화를 하고 누군가는 손으로 대화하듯이 이윤이와 조재영은 보고 느끼고 만들기로 대화한다고. 그 대화는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하고 격려한다고. 그 집합체가 여기 눈 앞에 펼쳐졌습니다. 둘이 나눈 교감의 형태를 그 궁극의 형태를 어떤 언어로 말할 수 있을까요?
세상에 이름없는 병들이 많듯이 말할 수 없는 작품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어떤 언어로 읽을 수 있을까? 과연 언어가 필요는 할까? 오히려 들을 수 있는 열림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예술이라는 언어가 때로는 우리가 하는 행위들에 불편한 옷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예술 밖의 언어를 상상하게 했습니다. 그런 생각 끝에 우연히 오래된 동양의 지혜, 명리학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또한 명리학으로 꼭 무언가를 하기 위함은 아니었어요. 그저 가까운 이웃의 명리학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우리의 마음이 호기심과 우연으로 만난 것이지요. 서로의 마음이 통한 그 놀라운 순간을 꼭 붙잡고 싶었어요. 우린 그 순간 정말 반짝였고 우린 정말 놀라울 정도로 서로 공감했고 하나가 되어 흥분했어요. 모든 것은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우리는 제목을 만들고 항목을 정하고 서로의 역할을 분류했어요.
‘리더‘s 테이블’은 그 놀라운 순간입니다.
자연과 인간이 서로 감응하는 상호유기적 관계로 인식하는 천일합일론 아래 명리학은 시작된다. 음양오행론은 음과 양의 기운이 서로의 꼬리를 물고 상생변화하는 목화토금수, 즉 땅의 힘으로 물이 아지랑이로 피어 올라 수증가로 바뀌고 서리로 내려앉아 다시 물로 응축되는 현상을 관념화 한다. 이는 다시 천간과 지지로 연결되어, 즉 하늘의 줄기(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 와 땅의 가지(저,축,인,묘,진,사,어,미,신,유,술,해) 사이에 존재하는 인간의 운명 즉 하늘과 땅의 변화 사이에 계속해서 이동하는 인간의 삶을 잠시 여기에 위치시키고, 다시 움직일 때를 알고 방향을 정하는 지혜를 주는 학문이다.
맞아요. 모든 시작은 나 자신에서 일어나는 것이기도 하지만 하늘과 땅에 의해서 계속 일어나고 있는 중이기도 합니다.
흙의 이윤이와 물의 조재영이 갑진년에 만나 바다와 땅이 만나는 갯벌로 가서 물의 시간 속에 감각의 원형을 찾으려는 움직임으로서 선을 이어간 <타이드 채널링>은 어찌 보면, 금의 기운이 강한 부암동에 위치한 ‘로쿠스 솔루스’의 재성이 되어, 공간의 굴곡과 책상의 곡선을 따라 새로운 발걸음, 새로운 에너지, 새로운 사유를 불러오고 있나 봅니다. 달의 주기가 신안 갯벌의 잊혀진 목조선의 시간을 불러오듯이, 그리고 ‘로쿠스 솔루스’에 네 개의 책상이 모여 ‘리더’s 테이블’을 만들었듯이, 우리는 우리 안의 때를 불러 일으키는 어떤 끌림과 그 변화가 이끄는 방향들 사이에 잠시 현 상태를 꼭 붙잡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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