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우리 시대의 ‘암야’를 목도하고 있다. 대선주자로 이름을 알린 순간부터 지금까지, 내내 거짓말과 독선으로 국민을 겁박하더니 기어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윤석열. 그리고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상정된 국회 본회의장에서 떼를 지어 퇴장한 국민의 힘 의원들. 그 모습을 생방송으로 지켜본 국민들이 확인한 것은 그들의 추악한 민낯이다. 그 드러난 모습의 천박함과 무도함이 예상했던 범위를 한참 벗어났기에, 우리는 분노한다는 표현으로 해소되지 않는 그 너머의 감정에 아연하고 있다. 적에 대한 분노를 넘어선 세상에 대한 분노. 그러니 이러한 분노를 불러일으킨 내란범과 부역자들이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우리 시대의 ‘암야’인가? 아니다.2016년 겨울 촛불 이후. 나라다운 나라를 기대하며 꿈에 부풀었던 국민들은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기간 동안, 실망과 환멸로 우리의 희망과 기대를 성찰해야 했다. 그리고 그 성찰 끝에 마주한 것은, 정치에 대한 환멸 그리고 세상이 그리 쉽게 나아지지 않는다는 아니, 어쩌면 세상은 원래 불합리하고 부정의한 것이라는 단념이었다. 우리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부정의를 옹호하는 일상의 장면들을 외면하며 각자의 생존에 몰두해왔다. 그러니 이러한 각자도생의 풍경을 낳은 저들 정치인의 무리가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우리 시대의 ‘암야’인가? 혹은, 생존이라는 핑계로 정의의 기준을 낮춘 우리 자신이 우리 시대의 ‘암야’인가? 아니다. 2024년 12월 경북 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공장 옥상. 민주노총 금속노조 한국옵티칼 하이테크지회 박정혜 수석부지회장과 소현숙 조직부장이 기업의 본사인 일본 니코덴코의 집단해고에 반발하여 330일이 넘게 고공농성 중이다.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다는 조건으로 정리해고가 가능해진 것은 IMF의 지시에 따른 경제 구조 재편의 일환이다. 비정규직이라는 노동 형태가 가능해진 것도, 이후 플랫폼 노동으로 진화하며 지금의 노동 풍경이 구성된 것도 가까운 연원을 따지자면 IMF 이후다. 이러한 세계 속에서 우리는 타인의 비극을 각자의 일상보다 우선하지 않는 걸 당연하게 생각한다. 우리는 무감해졌고, 이 세계에 순응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세계를 불러온 이전의 정권들이, 그 오래된 정치인들이 우리 시대의 ‘암야’인가? IMF가 아니, 자본주의 체제 자체가 우리 시대의 ‘암야’인가? 아니다. 이 모든 것들을 없앤다고 새로운 사회는 오지 않는다. 대통령이 감옥에 가고, 정치인들의 얼굴이 교체된다고 해서 우리가 바라는 사회가 도착했다고 느끼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당장 수행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을 찾는 것은 시대의 ‘암야’를 응시하는 피곤한 일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갈 기회를 엿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잠시나마 자신을 속이고, 여기가 우리가 바라는 세계가 아니라는 자각을 계속해서 유예시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어떠한 영웅도 우리의 이런 게으름과 비겁을 해결해주지 못한다. 우리 시대의 ‘암야’를 찾는다. 무엇이 우리를 여기로 이끌었을까. 오늘의 분노와 자각 끝에 우리가 지금 목도하고 있는 우리 시대의 ‘암야’는 새로운 세계를 상상할 힘을 잃어버린 우리 내면의 풍경이다. 그것은 폐허에 지나지 않는다. 부역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목격자이자 범인이다.그러니 여기서 “불온한 상상력”을 재정의한다. 상상력은 그 자체로 불온한 것이다. 불온하지 않으면, 즉 지금의 세계를 거부하고 각자의 새로운 세계를 그리지 못한다면 그것은 상상력이 아니다. 세계에 아부하지 않는다. 동시대에 아양 떨지 않는다. 예술가의 작업은 불온한 상상력의 발로이며, 시민의 작업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그러한 태도로 우리 시대의 ‘암야’를 건너가보고자 한다. 불온한 세계들의 연대를 상상한다. 극장에서 또한 광장에서, 각자의 내면에 새로운 세계를 품고 상상력의 불온성을 회복한 동지들을 만나기를 기대한다.
낭독
연극적 이미지는 기호들의 격류로부터 얻어낸 것이고, 시간적으로 압수된 것이며, 생성되는 만큼 해체되며, 시각적이고 청각적인 연극적 이미지의 구성은 곡예의 즐거움이다. 잠시 이 외줄에서 내려오고자 한다. 주관적인 감상으로 이미지의 몸집을 부풀린 연극 말고 어쩌면 있을지도 모르는 세계를 더듬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한다. 제작의 압박에서 비켜서서 희곡을 함께 읽어보고 낭독을 통해 단순한 연극을 위한 질료가 아닌 언어에 부여된 질서와 무질서를 넘나드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한다. (연출의 말, 윤한솔)
<암야>
작 염상섭
연출 윤한솔
배우 김용희 김원태 김효영
<추야>
작 전성현
연출 윤한솔
배우 김용희 김원태 김효영
<밥>
작 염상섭
연출 조웅철
배우 박지원 박현지 성지원 이승희
<맘마>
작 주은길
연출 조웅철
배우 박지원 박현지 성지원 이승희
자문 이혜령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교수)
해설과 강연 이종호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음향 전민배
촬영 한문희
기획 정유진
제작 그린피그
*이 공연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관하며 국민체육진흥공단에서 후원하는 2024년 한국 작고문인 선양사업의 일환으로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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